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스차일드 가문 (문단 편집) ==== 영국 로스차일드(현 본가) ==== 로스차일드 가문의 창립자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의 3남인 네이선 마이어 로스차일드가 1798년 [[대영제국]] [[런던]]에 세운 지부다. 위에도 설명했듯이 원래 로스차일드 가문의 본가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였지만 정작 독일 본가는 대가 끊어졌고 결국 20세기 초에 철수하면서 몰락했다. 반면 영국 지부는 대영제국이 19세기 세계 패권국이 되면서 독일 본가보다 규모가 더 커졌고, '''영국 지부가 오늘날 로스차일드 가문의 본가가 되었다.'''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처음에 맨체스터에 직물 사업을 차렸고, 나중에 자본이 확장하자 런던에 은행을 세워 본격적인 금융 사업을 시작하였다. 19세기 초, 로스차일드 가문은 영국이 나폴레옹 전쟁 동안 타국 정부에 빌려준 금을 관리하고, 자금을 조달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철저하고 정확한 정보, 운반 시스템을 활용하여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전투를 치르던 웰링턴 공작에게 군대 자금을 지원하였다. 또한 정부 주도 프로젝트에 복잡하고 정교한 금융을 제공하여, 영국이 19세기 후반에 최전성기를 맞는데 큰 역할을 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런던에 세운 은행은 영국은행에 충분한 주화와 금화들을 공급하였고, 유동성 위기를 피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네이선 마이어 로스차일드[* 위의 마이어 암셀의 3남 네이선 마이어의 손자이자 동명이인이다.]의 사업은 그의 장남이 물려받았고, 그의 경영 기간동안 로스차일드 은행은 1875년 영국이 수에즈 운하의 지분 매입을 지원했다. 또한 남아프리카 총독 [[세실 로즈]]에게 자금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1873년, 영국 지부는 다국적 광산 회사 '리오 틴토'의 구리 광산을 인수했다. 1905년 로스차일드 가문은 리오 틴토의 지분을 30% 가량 소유하며 최대주주가 되었다. 1887년, 프랑스 지부와 영국 지부가 합작하여,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회사인 드비어스의 지분을 인수하여 최대주주가 되었다. 한편 로스차일드 가문은 [[브라질]]의 독립에도 크게 관여했다. 19세기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로스차일드 가문의 위상은 대단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대저택들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그 수도 41개나 되었다. 심지어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역시 1909년에 로스차일드가 영국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이라고 평한 바 있다. ||<-3> [[파일:영국 국기.svg|width=30]] '''로스차일드 남작''' (Baron Rothschild, 1885년) || || 대수 || 이름 || 생몰년 || || 1 || 네이선 메이어 로스차일드(Nathan Mayer Rothschild)[* 영국의 은행가, 사업가, 금융가.] || 1840-1915 || || 2 || 라이오넬 월터 로스차일드(Lionel Walter Rothschild)[* 영국의 은행가, 정치인, 동물학자.] || 1868-1937 || || 3 || 나다니엘 메이어 빅터 로스차일드(Nathaniel Mayer Victor Rothschild)[* 영국의 은행가, 군인, 과학자.] || 1910-1990 || || 4 || 나다니엘 찰스 제이콥 로스차일드(Nathaniel Charles Jacob Rothschild)[* 영국 은행가, 자선사업가, 교수.] || 1936-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